나는 죽어서도 말한다
(고 박윤화 초대 한인회 회장 묘에서)
오늘은 2005년 11월 1일 All Saint’s Day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는 구나.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그렇게도 반갑지가 않다네!
그저 이국풍만 풍기니…
지난 이맘때는 놀랍게도 반가운 음성이 들렸는데… 그것도 수십 여 년 만에
그리고 그토록 보기에 가슴 뭉클한 태극기 몇개가 내 주위에 꽃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 후부터 한 해가 되는 이 시간인데 왜 반가운 음성이며 작은 태극기가 아직 없는지?
매년 이맘때면 다시 오마 하던 그 약속의 속삼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기구한 시대에 태어난 나. 일본 군국주의가 팽창의 활기를 치고 있을 때.
나는 젊은 나이에 꿈도 많았지!
그러나 그 꿈은 다 사라지고 생각지 않은 인삼장수로 이곳 필리핀까지 오게 되었단다.
시키는 대로 현지인과 결혼하고 정착하여 차후에 올 일본인들을 위한 육탄의 전진 기지역활을 담당하라는…
나라와 태극기를 잃은 한 많은 민족의 슬픔을 간직한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지…
그런데 놀랍게도 “I Shall Return” 이라고 약속한 대로, 미군의 상륙 “Tacloban).
그리고 감격의 조국해방
그러나 태어난 현지 자식 때문에. 이젠 타의보다 자의로 이곳에 계속 살게 되었지…
이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준 태의 열매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대사관이 개설되고 목재 상사 주재원 기타 한인들이 조금씩 모여 이곳에도 처음으로 한인회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부족한 사람이 첫 회장이 되었다네.
1973년 12월 이국의 망년을 보내는 자리에서, 이곳에서 한인교회를 세울 것을 다짐하면서 준비가 시작되었으니 다음 해 4월 부활주일에 창립예배를 가졌다네.
그것이 마닐라한인연합교회가 되었으며 나는 교회 건축 위원장을 맡아 봉사해오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지난달의 모든 아픔을 잊고 지금 천국에 와 있다네.
교회 장으로 천국 환송잔치를 베풀어준 행사에 감사하다네.
매년 오겠다는 그약속의 시간이 다시 왔기에 오늘 (2005.11월 20일 추수감사 주일) 기다렸던 그 반가운 음성과 함께 태극기가 내 주변에서 다시 보게 되었으니
친구여. 고맙구려! 내년에 다시 만나세.
(이상의 글은 고 박윤화 초대 한인회 회장(1967~1979)의 묘를 찾으면서 지난달의 사연을 배경으로 한 고인과의 상직적인 대화 속에서 신용기 장로가 산문시 형태로 엮었음을 알려드립니다.)